겨울, 잠시 쉬기 위해 돌아간 곳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면서 떠났던 혜원은 힘든 서울 생활에 잠시 쉬기 위해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역시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선 집에 남아있는 재료로 수제비와 배추전으로 추운 날씨에 꽁꽁 언 몸과 허기진 배를 채운 혜원은 며칠 더 쉬었다 갈 생각이었는데 남아있던 쌀과 밀가루도 떨어져 버렸다. 시골이라 읍내에 나가기에는 너무 멀고 근처에 고모가 살고 계시지만 자신이 이곳에 다시 돌아온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마침 친구 은숙이 집으로 찾아왔고 갑자기 고향에 나타난 혜원의 아픈 곳만 콕콕 집어 질문하는 은숙에게 혜원은 배고파서 내려왔다고 말한다.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좋은 결과는 없었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겨우 허기를 채우며 버텼던 서울생활에 배고파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혜원의 말은 진심이었다. 마당에 나온 혜원은 지나가는 낯익은 얼굴을 보았고 친구 재하였다. 재하는 다른 도시의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었다. 그 후 재하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뒤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자신의 과수원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단짝이었던 은숙은 전문대를 나와 바로 농협에 취업했고 어렸을 때부터 고향 밖을 나가보지 못했던 은숙은 늘 도시생활을 꿈꾸고 있는 친구다. 그리고 아무도 살지 않는 집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본 고모가 엄마가 돌아온 줄 알고 찾아오셨다. 제대로 먹지 못한 혜원은 고모집에서 끼니를 해결했고 이것저것 반찬을 챙겨주시는 고모에게 사나흘 지내고 갈 것이라고 말하며 엄마에게는 자신이 집에 다녀간 것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혜원의 집 마당에는 강아지를 안고 있는 재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재하는 혼자 지내는 혜원이 밤에 무섭지 말라며 강아지 오구를 건넸고 금방 서울로 간다는 혜원의 말과 달리 손에 들린 짐들을 보고 금방 떠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다. 엄마는 혜원의 수능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게 밤이 늦도록 엄마를 기다렸지만 고모에게 혜원을 부탁하고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고모는 엄마가 금방 돌아올 거란 말로 혜원을 위로했지만 엄마의 편지를 발견한 혜원은 엄마가 떠나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고 금방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혜원의 가족은 병든 아빠의 요양으로 시골에 내려와 지냈다. 하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자고 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떠나버렸고 혜원은 엄마 없이 보란 듯이 잘 살아내고 싶었다. 결국 혜원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혼자 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답 그리고 엄마의 흔적
지내다 보니 겨울만 보내고 올라가기엔 너무 아쉬웠던 혜원은 봄이 오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더 지내보기로 한다. 감자 싹이 나왔고 혜원은 친구들과 함께 다른 작물들을 심으며 농촌 생활에 더 적응해 나갔다. 이곳의 토양과 공기를 먹고 자란 혜원은 농촌 생활이 익숙했지만 불편한 점들도 있었다. 간혹 너무 과한 동네 어르신들의 관심과 요리할 때마다 떠오르는 엄마였다. 하지만 엄마의 음식을 먹고 자란 혜원은 자연스레 엄마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제철 식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어릴 적 혜원에게 엄마의 요리는 독창적이고 독특했기에 엄마가 천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갑자기 엄마의 편지가 도착했다. 혜원은 편지를 읽지 않고 집배원 아저씨께 반송처리를 부탁했지만 반송 주소도 없는 엄마의 편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심 기대했지만 편지의 내용은 혜원이 가장 궁금해했던 감자 빵 만드는 방법이었다. 혜원이 크면 가르쳐 준다는 약속을 지킨 엄마에게 답장을 하고 싶어도 보낼 방법이 없었다. 엄마는 혜원이 이곳에 온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왔고 한여름 농사일은 너무 더웠다. 은숙이 근무하는 농협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는 혜원에게 토라져 있던 은숙은 회사 상사에 대한 끊임없는 불평을 해댔고 대수롭지 않게 싫으면 그만두라는 혜원의 무심한 말에 화가 나있었다. 계속 은숙이 신경 쓰였던 혜원은 또 엄마를 떠올렸다. 혜원이 화가 났을 때 달래줬던 마법사 같은 엄마의 크렘 브릴레를 만들어 은숙을 찾아갔고 맛있게 먹는 은숙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더운 여름날 오후, 콩국수를 먹던 혜원은 나무 아래에 앉아 엄마와 토마토를 먹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빠와의 결혼과 요양으로 시골에서만 생활하는 엄마가 신경 쓰였던 혜원은 외갓집과 연락을 하지 않는 엄마에게 외할머니의 안부를 걱정했고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 물었었다. 혹 자신 때문에 엄마가 혼자 지내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와 오래 연애해서 그런지 다시 연애할 생각이 안 든다고 말했고 아빠가 보고 싶냐는 혜원의 물음에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토마토 꼭지에서 엄마의 말대로 다시 토마토가 자라났다. 노지에서 햇볕을 받고 자라 완숙이 된 상태에서 딴 토마토여야 가능한 것이었다. 아빠가 보고 싶다는 뜻이었음을 알게 된 혜원은 이곳에서 엄마를 기억하며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다.
떠난 것이 아닌 다시 돌아온 것
재하는 서울을 떠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많이 좋아했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생각할 여유도 없는 회사생활에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혜원은 그동안 피하기만 했던 남자 친구에게 먼저 연락했고 늦은 시험합격을 축하해줬다. 술을 마셔 전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것만은 기억했다. 자신은 여기로 떠나온 것이 아니라 돌아온 것이라고. 다시 가을이 왔고 혜원의 통장 잔고도 바닥을 보여갔다. 재하에게 마음이 있는 은숙은 아직 고백하지 못했고 그런 은숙에게 혜원은 말하지 않고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하고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은숙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정작 혜원은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늘 견디기만 했었다. 며칠 후 재하의 농장에 간 혜원은 사과수확을 도와달라는 재하의 말에 고모 농사일을 도와야 한다며 바쁜 일상을 얘기했고 그에 재하는 여기에 머무르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피하고보는 혜원에게 바쁘게 살면 해결이 되냐고 말했다. 그날 밤 많은 비가 내렸고 고모의 농사는 물론 재하의 과수원도 피해를 입었다. 일 년 동안 열심히 지은 농사를 망치게 되어 혜원은 재하를 걱정했지만 재하는 몸은 피곤하지만 적어도 사기, 잔머리가 없는 농사일이 더 체질에 맞다고 했다. 그리고 예쁘게 잘 익은 사과 하나를 따주며 혜원과 다르게 태풍에서 끝까지 버텨냈다고 얘기했다. 그날 집에서 곶감을 만들며 생각에 잠긴 혜원은 가장 중요한 일을 외면하고 열심히 사는 척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재하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선택한 시골에서의 삶이 싫었던 혜원은 늘 도시에 나가 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곶감을 주무르며 겨울이 와야 정말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다고 또 혜원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다음 날 혜원이 학교에 간 사이 엄마는 반찬을 만들고 혜원에게 편지를 남겨두고 떠났다. 곧 대학생이 돼서 떠나는 혜원에게 엄마도 이제 이곳을 떠나 그동안 포기했던 일들을 시도해보고 싶다고 했다. 실패할 수도 있고 늦은 것 같은 불안함도 있지만 이제 엄마만의 시간을 만들어 가기 위해 문밖으로 나간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가 다시 도시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혜원이 자랄 때까지 힘을 얻을 수 있는 엄마만의 숲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혜원이 힘들 때마다 엄마와 함께 지내오던 이곳에서의 흙냄새와 햇볕과 바람을 기억한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엄마와 혜원 두 사람 모두 이곳으로 잘 돌아오기 위한 출발선에 서있다고 생각했다. 고향으로 돌아오고 사계절을 보내면서 이제야 혜원은 엄마의 말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날 밤 엄마에게 답장을 썼다. 그리고 다음 날 집 문단속을 하고 혜원이 떠났다. 혜원이 남긴 쪽지를 본 은숙은 혜원이 이곳을 떠난 것이라 생각했지만 재하는 혜원이 방치해두기만 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고 돌아올 거라 믿고 있었다. 그렇게 또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 혜원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고 그때 또 다른 누군가도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다.
가끔 삶이 버겁고 지칠 때
기대와 달리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왔을 때 앞으로의 미래와 지금 처한 상황과 회사생활 때문에 삶이 정말 버거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금만 쉬면 살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막상 그 어떤 것도 해보지 못하고 쳇바퀴 돌아가듯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했었다. 그러다 보게 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엄마와의 기억들로 위로와 용기를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혜원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사계절을 담아낸 영상과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요리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힐링이 필요할 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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